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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자서전18

양구에서 신문배달을 시작하다. 참 어렸을 때였습니다. 중학교 1학년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갈 때까지 크게 할 일은 없고 그냥 기다림이 연속이었습니다. 학교 수업이 3시나 4시에 끝나고 나면 집에 가는 버스가 오는 7시까지 여유가 있었습니다. 물론 공부를 해도 되겠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죠. 아이들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가까운 오락실에서 시간을 소비하기도 하였지만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다행히도 저녁에 신문을 돌릴 수 있는 신문보급소를 알게 되었습니다. 1시간 정도만 돌리면 될 물량이었고 돌리는 장소도 학교 근처라 어려움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물론 학교 주변 지리를 잘 아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약간 불안감도 있었습니다. 자전거에 신문 100 여부를 싣고 가장 먼 곳부터 달려가서 신문을 전달하였습니다. 당시 남면에 군인아파.. 2023. 2. 3.
수원 아진공업에서 사출업무를 배우다. 1995년 군입대에 앞서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하다가 그동안 농업 관련 일만 하다 보니 다른 일도 하고 싶어 과감하게 공장에서 일을 해보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곳은 수원 영통지역에 있는 아진공업으로 삼성 엘지 등에 납품하는 협력업체로 세탁기, 컴퓨터 자판 등 각종 플라스틱 제품을 만드는 곳이었습니다. 공장은 24시간 가동이 되었으며 8시간씩 3교대로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이런저런 일을 했지만 이렇게 3교대로 24시간 가동하는 곳에서는 처음 하는 것이라 신선하기도 하였습니다. 군 입대전에 좀 힘든 일을 하고 싶었지만 이곳에서 일하는 것이 생각보다 힘들지 않고 단순한 일이었으며 일하시는 분들 역시 밝은 표정으로 즐겁게 일하고 있었습니다. 첫날 일은 드럼세탁기가 아닌 일반세탁기에 세제류가 들어가는 부품의.. 2023. 1. 31.
1994년 안면도의 모습을 바라보며 2014-05-13 22:30:00 본 글은 상남얼 6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때는 1994년 5월 11일 원예과 A반 친구들과 함께 학교 정문을 나섰다. 목적지는 안면도였다. 많은 기대를 안고 우리는 9시 30분경 정문에서 관광버스를 타고 짧고 소중한 여행을 시작하였다. 도로의 가로수를 보며 차안의 음악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많은 어려움과 힘든 것을 잊고 나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태양은 서서히 떠올라 있고 논밭에서 일하고 계시는 농부를 바라보면서 나는 좀 죄송한 마음이 들기도 하였지만 장래의 꿈이 농민이라 나도 "우리의 터전이자 고향"을 생각하면서 조용히 지도책을 살펴보았다. 삽교천에서 10여분 휴식을 취하고 다시 길을 재촉하였다. 옆으로 서해안 고속도로가 건설 중이었다. 많은 자연의 파괴로 인하여 식.. 2022. 12. 26.
용인 다보스 병원에 입원하다. 2012-03-07 09:00:23 큰 아이가 입원을 했다. 감기에 고열이 있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용인 다보스병원에 2월 29일 갔더니 병원에서 "폐렴 증상이 있으니 1주일 정도 입원해야 될 것 같습니다."라고 하여 입원을 시켰다. 대부분 부모들은 같은 생각일 것이라고 한다. 내가 아프면 이 정도는 그냥 약 먹어도 될 것이라는 판단을 하지만 내가 아닌 가족이나 아이들이 아프면 사정이 달라진다. 병원의 말을 100% 신뢰하고 그들이 시키는 것에 따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도착하자마자 각족 피검사 등을 비롯하여 각종 검사를 실시하였다. 검사를 하는 이유는 이해가 된다. 아이의 현상태를 알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사 결과는 바로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2주가 걸린다고 한다. 과연 아파서 입원했는.. 2022. 12. 6.
시골이 그립다. 2012-02-16 08:45:26 시골에 있을때는 참 도시로 떠나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시골이 너무도 그립다. 철이 없었을때 그냥 도시가 그리웠다. 난시청 지역이라 TV는 나오지도 않고 라디오를 즐겨 들으면서 TV도 잘나오고 사람도 많은 그런 도시사람이 너무도 부러웠다. 그중 가장 부러워했던 것은 언제든 가고싶을때 갈 수 있는 버스가 많은 것과 수 많은 가게가 있기 때문이였다. 시골에서 무엇을 하나 살려고 하면 왕복 3시간의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렇게 3시간이 걸려도 가게에 주인이 있으면 다행이다. 가게를 비우고 밭일을 하러 갔다면 낭패가 아닐 수 없다. 다행이도 당시 가게 주인은 어디 떠날때 가게문을 열어놓고 그냥 간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냥 물건을 가져오고 다음에 돈을 주거나 아.. 2022. 12. 6.
나의 어느 겨울날 이야기 2012-01-28 17:21:56 사람이 지치고 힘들때가 있다. 그때는 나의 어렸을때를 한번 생각해보자. 그리고 오늘의 나를 생각해보자. 그때보다 지금이 더 편하고 행복하다면 성공한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도전하지 않고 해보지도 않고 걱정하는 것은 어쩌면 사람들의 당연한 심리일지도 모른다. 남들이 힘들다고 해서 도전도 하지 않고 포기하는 것은 너무나도 좋은 기회를 놓치고 마는 것일지도 모른다. 1982년 난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내이름도 난 쓸줄 몰랐다. 그것이 자랑은 아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끄러운일도 아니였다. 시골마을에서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공부가 아닌 일이였기 때문이다. 겨울에 산에 올라가서 땔깜준비하는 것이 일상이였고 여름에는 논과 밭에 올라온 잡풀들을 제거하는 것이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2022. 12. 6.
가나안 농군학교 420기 수료를 하면서 2012-06-14 10:59:00 2012년 6월 11일 우리는 2박3일이라는 짧다면 짧은 교육을 받게 되었다. 장소는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연봉전길5 에 위치한 가나안농군학교이다. 사실 하남시에 있는 가아안 농군학교에 갈려고 하였으나 일정이 맞지 않아 장소를 변경하였다. 이미 난 1994년에 가나안농군학교 선생님으로부터 교육을 받은 경험이 있기 때문에 학교에서 어떤 교육을 하는지는 미리 알고 있었다. 이 때문인지 몰라도 가기 전부터 설래임도 있었지만 두려움도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생활은 매우 아끼고 절약을 하기 때문에 모든 행동이 군대처럼 힘들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던 것이였다. 하지만 그것은 도착하자 마자 내 생각이 잘 못 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껴쓰는 것은 맞지만 무조건 아끼는 것이 .. 2022. 12. 6.
천안에서 버섯재배에 도전해보다. 2013-12-01 18:21:00 고등학교 졸업하고 농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할려고 하였으나 농업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만 알고 농업을 한다는 것은 지금 현재보다 더 나아질 가능성이 적었다. 4년제는 너무 긴시간이 소비된다는 생각이 들어 금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적당한 전문대학을 가기로 결정하였다. 그 중 마음에 드는 곳이 딱 하나 있었는데 그곳이 지금 천안에 있는 천안연암대학이다. 이름이 변경되기 전에는 연안축산원예전문대학이였지만 이름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곳에 갈때 정말 빈손으로 갔다. 돈도 없이 차비만 들고 그곳을 간 것이였다. 학교에 기숙사가 있어서 숙식걱정 없이 갔었는데 정말 아무것도 안가져갔더니 기숙사에서는 이불은 가져와야 한다는 것이였다. 뭐. 할수 없이 바닥에 깔려 있는 담요를 하다 더 달.. 2022. 12. 4.
LG수퍼마켓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하다. 2014-02-20 23:00:00 1999년 3월 부터 한경대학교 식물자원과학과에 편입을 하였다. 자금이 충분하지 않아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학교를 다닐려고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야간으로 편입을 했다. 그렇게 학교를 다니면 낮에 일할 수 있는 곳을 찾던 도중 4월초 학교에 가다가 우성아파트 앞에 구인란을 보게 되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난 그 글이 눈에 띄었다. 5시간정도 일하면서 학교 다니면 나에게는 참 좋은 시간대였기 때문이다. 면접을 보러 갔는데 하루종일 일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였다. 한마디로 실망하지 않을수 밖에 없었다. 여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 까지 이지만 남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였다. 하지만 그래도 직업이 있어야 될 것 같아, 면접한는 사람에.. 2022. 12. 4.
용인 제일석유에서 고객응대 실천 2015-02-20 23:20:00 1994년도 1월에 운전면허를 취득했지만 차가 없었기 때문에 실제 운전을 한 경험이 거의 없었는데요. 1997년 12월 경기도 용인시 마평동에 위치한 석유 판매점에서 일을 하면서 운전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곳은 일반 주유소가 아닌 석유 판매점으로 개인이 운영하는 곳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단순하게 배달만 하는 일이라 그냥 쉽게 일을 하려고 하였으나 세상은 그리 쉬운 일만 있는 것이 아니였으며 또한 일을 대충대충 할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영업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으며 그곳에서 배운 영업 전략은 아직도 많이 응용하고 있답니다. 처음 일할 때는 200여 거래처에 등유를 배달해주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나는 곳은.. 2022. 12. 4.
TV가 추억을 담는다. 어렸을 때는 참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그냥 산과 물이 세상이 전부인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등잔불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 전봇대가 세워지고 전깃불이 들어오더니 동네 한 집에 TV가 설치가 되었습니다. 내가 살던 집에는 TV는 물론 전화기, 가스레인지도 없었고 라디오 한대가 세상소식을 전하는 전부였답니다. 그리고 그 삶에는 부족함도 없었고 더 이상 욕심도 없었습니다. 그냥 그것이 삶이고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르고 학교에 갔다가 돌아와 보니 얼마 전 장날에 본 TV가 집에 와 있었습니다. 당시 장날 전파에서 중고 흑백 TV가 5만 원에 파는 것을 보면서 한참을 쳐다본 것을 어머니가 본 것 같습니다. 그렇게 집에 TV가 생.. 2021. 11. 17.
김밥보다 깻잎이 더 좋은 이유 오늘 아내가 깻잎으로 쌈을 만들어 주었는데 갑자기 옛날 소풍 때의 생각이 난다. 깻잎을 보면 자꾸만 옛날 생각에 잠긴다. 초등학교 다닐때 우리 집은 가난하다는 것 그 이상이었다. 태어나자마자 45일 만에 아빠가 돌아가신 것 때문이기도 했지만 손바닥 만한 논과 밭에서 나오는 농산물은 우리 가족의 끼니를 때우기는 너무나도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밥에는 밥알보다 감자가 더 많았고 난 그 감자가 싫어서 매일 밥보다는 누룽지만 먹으면서 보내기도 했다. 초등학교 초반에는 도시락을 가지고 다녔다. 그냥 밥과 신 김치가 다였지만 배가 고픈 나에게는 그것도 매우 고마웠던 것이였다. 또한 나라에서 보리쌀을 주어 쌀밥보다는 보리쌀 밥 먹는 날이 더 많았지만 그래도 도시락은 하얀 쌀밥만 가지고 다녔다. 그러다가 어느 날 .. 2021. 11. 4.
강원도 양구 오일장 아침부터 집안이 요란하다. 다름이 아니라 오늘은 시장에 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5일마다 열리는 장날이지만 장에 가는 것은 이 시골에서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대를 많이 할 수밖에 없다. 시골이라 집에 현금이 없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해서 장에 갈 때 굳이 돈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버스 요금만 챙겨 가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이야기를 한번 만들어 볼까. 때는 1983년 4월 5일 식목일이기도 하지만 5일장이기도 하다. 아침에 버스를 탈 생각을 하니 잠이 오지 않고 뜬눈으로 방문으로 들어오는 새벽의 빛을 바라본다. 시골 버스라 하루에 읍내에 나가는 버스는 딱 한번 있고 또한 아침에 읍내에 나가서 저녁에 들어온다. 그것은 참 많은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시장에 가서 시간이 .. 2021. 11. 4.
버섯재배 기존의 틀을 깨다. 1998년 여름 이야기 고등학교 졸업하고 농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려고 하였으나 농업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만 알고 농업을 한다는 것은 지금 현재보다 더 나아질 가능성이 적었다. 4년제는 너무 긴 시간이 소비된다는 생각이 들어 금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적당한 전문대학을 가기로 결정하였다. 그중 마음에 드는 곳이 딱 하나 있었는데 그곳이 지금 천안 성환에 있는 천안 연암대학교이다. 이름이 변경되기 전에는 연암 축산원예전문대학이었지만 이름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곳에 갈 때 정말 빈손으로 갔다. 돈도 없이 차비만 들고 그곳을 간 것이었다. 학교에 기숙사가 있어서 숙식 걱정 없이 갔었는데 정말 아무것도 안 가져갔더니 기숙사에서는 이불은 가져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뭐. 할 수 없이 바닥에 깔려 있는 담요를 하다 더 달라고 해서 그럭저럭.. 2021. 10. 26.
여주 농우종묘 육종연구소에서 무와 배추를 재배한 이야기 1994년 6월 방학을 맞이하였습니다. 대학은 고등학교와 다르게 일찍 방학을 하는데요. 여름방학이 2달이 넘기 때문에 충분한 시간이 있답니다. 이 시간 동안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하던 중 교수님이 여주에 있는 농우종묘육종연구소를 소개해 주었답니다. 원예과였지만 학교에서 배우는 것과 실제 현장에서 뛰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수업시간에 귀가 닳도록 배웠기 때문에 "정말 이론과 얼마나 틀릴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한 것이 사실이었죠. 이에 따라 무조건 "제가 그곳을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곳 농우종묘육종연구소를 찾아 갔습니다. 처음 도착해서 소장님과 인사를 나눈 다음 연구소를 돌아보았답니다. 처음에 연구소라고 해서 수많은 실험 도구와 각종 장비가 나를 기다릴 줄 알았지만 내가 해야 .. 2021. 10. 5.
1998년 안성 올그린센터에서 토마토 재배를 하면서.. 1998년 2학기 수업을 모두 마치고 연암대학교 교수님이 취업할 곳을 알려 주었는데 그곳은 다름 아닌 안성에 있는 올그린센터였습니다. 이곳에서 일하면서 그동안 배운 농업에 대한 생각이 180도 바뀌게 되었습니다. 농사라는 것이 힘들고 더럽다는 인식이 사라지게 만든 곳이고 합니다. 또한 그동안 농업에 대한 자신감으로 가득 찬 나에게 농업의 어려움과 가능성에 대한 깨달음을 준 곳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농업은 미국이나 인도 등에 비하여 매우 노동집약적으로 생산되고 있습니다. 물론 농업용 토지가 부족한 것도 사실이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농업이 3D에 속하여 회피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농촌에 젊은 사람들 구경하기는 매우 어렵다 못해 요즘은 아이들 울음소리 조차 듣지 못하는 동네도 점점 늘어나고 있는 .. 2021. 10. 2.
28년전 1993년 12월 하남시 미사리에 있는 화훼농장 근무 이야기 1993년 12월 경기도 하남시 미사리에 있는 한 농원으로 취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때만 해도 학교 컴퓨터교실을 운영하고 있어서 취업의 전선에 나가지 않아도 되었지만 사회 경험이 부족한 나에게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취업을 나가게 되었습니다. 친구 성춘, 대순이랑 3명이 함께 가는 길이였고 그때 서울 방문은 거의 처음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었습니다. 어렸을 때 엄마의 손을 잡고 고모내집에 갈 때 빼고는 한 번도 와 본적이 없었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서울에 있는 각종 건물들과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는 매우 신기할 따름이었습니다. 또한 그동안 여기저기서 들은 이야기는 있어지만 그것은 아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동서울터미널에서 내려서 2호선 지하철을 타게 되었는데 타는 방법을 몰.. 2021. 10. 1.
용인 캐리비안베이 에서 고객응대를 배우다. 1997년 7월 24일 군 전역을 하고 집에 오니 할 일이 없었습니다. 학교 개강까지는 7개월이라는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하기는 해야 했죠. 우선 3일 정도 집에서 쉬면서 어떤 일을 할까 고민을 하다가 고향에 가서 벌초를 하고 오면서 생각을 하려고 무작정 강원도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벌초를 하면서 그동안 농업 관련 일만 해왔기 때문에 이번에는 좀 색다른 일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용인에서 가장 큰 업체를 살펴보다가 에버랜드가 생각이 났습니다. 벌초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벼룩시장, 교차로를 보면서 에버랜드 일자리를 찾아 보니 캐리비안 베이에서 사람을 모집하고 있었습니다. 아르바이트였지만 나에겐 기분 좋은 소식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생각할 시간도 없이 바로 전화를 했습.. 2021.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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