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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자서전

용인 캐리비안베이 에서 고객응대를 배우다.

by 농수도 2021.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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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7월 24일 군 전역을 하고 집에 오니 할 일이 없었습니다.  학교 개강까지는 7개월이라는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하기는 해야 했죠. 우선 3일 정도 집에서 쉬면서 어떤 일을 할까 고민을 하다가 고향에 가서  벌초를 하고 오면서 생각을 하려고 무작정 강원도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벌초를 하면서 그동안 농업 관련 일만 해왔기 때문에 이번에는 좀 색다른 일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용인에서 가장 큰 업체를 살펴보다가 에버랜드가 생각이 났습니다.

벌초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벼룩시장, 교차로를  보면서 에버랜드 일자리를 찾아 보니 캐리비안 베이에서 사람을 모집하고 있었습니다.  아르바이트였지만 나에겐 기분 좋은 소식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생각할 시간도 없이 바로 전화를 했습니다 " 여보세요. 혹시 사람 아직도 구하나요" 그랬더니 어떤 여성이 받아서 " 예. 내일 케리비안 베이안에 있는 사무실로 들어오세요"라고 말을 하였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66번 에버랜드행 버스를 타고 곧장 가서 케리비안 입구에서 들어 갈려고 하니 앞에서 이쁜 안내원들이 막아섰다. " 어떤 일로 오셨나요" 나는 바로 " 예..○대리님과 통화했더니 사무실로 오라고 하더라구요" 했더니 "그러면 왼쪽에 있는 출구로 들어오세요" 하는 것이었다.

옆 출구를 통하여 들어가서 내부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곳은 천국이었습니다. 그동안 살면서 이런 시설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픈을 96년 7월에 오픈을 했으니 오픈 1년밖에 되지 않아 시설들이 매우 깨끗하고 또한 많은 놀이 시설의 나의 눈을 놀라게 했던 것이었습니다. 

사무실에 들어갔더니 6~7명 정도 사람들이 반겨 주었고 한 분이 나에게 일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때가 8월 7일 이었죠.

첫날 일은 야외풀장 주변에 있는 쓰레기통에 있는 쓰레기를 수거하는 것과 쓰레기통 위에 있는 재떨이를 청소하는 것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쓰레기통은 업무 끝나고 버리는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이곳은 그럴 여유가 없었습니다. 쓰레기는 생각할 시간도 없이 가득 찼고 또한 재떨이는 3분 단위로 청소를 해야 했습니다. 한마디로 깨끗함을 유지하기 위해 이렇게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하루 종일 서서 일하다 보니 다리가 아픈 것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다행히도 직원 관리가 잘 되어 있어서 쉬는 시간을 넉넉하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쉴 때 눈치 주는 사람도 없었으며  교대로 돌아가면서 편안하게 에어컨 바람 나오는 시설에서 편안하게 쉬게 해 주었습니다.

여기서 느낀 점은  일할 때 제대로 하고 쉴 때 또한 편안하게 쉬는 것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일을 하면서 쉴 시간이 없다면 결국 일 능률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직원에 대한 인격존중이 이곳에는 분명하게 존재하였고 그 모습은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시간당 3,800원이었는데 당시 주변 아르바이트에 비하여 적은 편이 아니었고 일 또한 하루하루 지남에 따라 힘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재미도 생기고 여유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또한 놀이공원 특성상 신나는 음악이 나와 그동안 못 들었던 노래를 이곳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듣게 되면서 아직까지도 일하면서 노래를 듣는 습성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더욱 마음에 들었던 것은 음식이었는데요. 첫날 식당에 들어갔더니 메뉴가 한식 일식 양식 등으로 나누어져 있어서  골라 먹을 수 있었습니다. 식권을 주고 나서 하얀색 플라스틱 식판에 밥과 반찬을 챙겨서 밥을 먹는데 아직도 그 맛을 잊을 수 없네요. 학교 다닐 때도 기숙사 생활을 해서 이렇게 식당밥이 몸에 배어 있었지만 이곳 식당은 집에 먹는 것보다 훨씬 좋았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친절한 영양사까지 식사에 대한 불편사항을 수시로 챙기는 것 또한 배울 점이었죠.

이렇게 하루 이틀이 지나가고 사흘이 된 날이었다. 그날 저녁 개인적으로 약속이 있어서 집에 일찍 가야 했기 때문에 마무리를 빨리 하고자 화장실 청소를 도와주기로 했습니다. 마감시간이 넘고 대부분 고객이 빠져나간 상태에서 고무장갑을 착용하고 화장실 변기와 그리고 문 등을 모두 청소를 최대한 빨리 마쳤습니다. 벌써 날이 어두워져 불이 켜졌으나 이쪽은 대부분 불이 꺼져 있는 상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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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한 3~4살 정도 된 꼬마 남자아이가 혼자서 화장실로 들어오더니 변기도 아닌 화장실 바닥에다가 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난 다가가서 이곳에다가 쉬를 하면 안돼죠" 라고 말을 했더니 아이가 "엉엉"우는 것이였습니다.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밖에서 아이 엄마가 와서 나에게 "아니 뭐라고 했길래 아이가 울어요"하면서 짜증을 내며 화를 내는 것이였습니다. 그리고 때마침  옆을 지나가는 ○대리에게 "직원 서비스 교육을 똑바로 시키세요"라고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대리는 고객에게 머리를 숙이며 "정말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말을 하면서 몇 번이나 사과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고객은 떠나가고 대리는 " 어디 소속이지?"라고 묻자 나는 " 예. 협력업체 김선규입니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는 바로 나에게 " 여기서 손님에게 잘못은 없습니다. 무조건 잘못은 직원이 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런 실수는 용서가 될 수 없습니다"라고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변명을 했지만 소용이 없었고 결국 난 그날로 그만둘 수밖에 없는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그래도 다행은 내가 3일밖에 되지 않은 아르바이트 생이고 해서 이번만은 넘어가기로 결정되어 다음날도 난 다시 출근할 수 있었지만 가슴속에는 이미 "세상 참 무섭다"라는 것을 충분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맞는 말이었습니다.  "고객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잘못이 없다!" 그리고 고객은 이곳에 놀러 온 것이고 기분 좋게 놀다가 가야 한다. 이곳에서는 첫 번째도 고객이고, 두 번째도 고객이고 세 번째도 고객이다."

다음날 아침 회의시간에 과장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이곳에 일하러 왔기 때문에 제 말을 들어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주말 또는 쉬는 날에 이곳을 찾아오면 저는 여러분을 고객과 똑같이 모시겠습니다."라고 말을 하는 것이었다.

정말 그럴까 생각도 해 봤지만 정말 사실이었습니다.

우리 아르바이트생 한 명이 쉬는 날에 친구들과 이곳을 찾아왔는데 이곳에서 일하는 책임자의 태도는 달랐다. "다른 고객처럼 똑같이 정중하게 대하는 것이었습니다. "  그동안 다른곳에서 일할때는 쉬는날 잠시 출근을 하면 이것 저것 시키고 또한 나의 시간을 무시하는 그런 일이 종종 있었는데 이곳은 달랐던 것이였습니다.

이런 모습은 나의 생각에 많은 변화를 주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잘못은 용서가 되지 않았습니다. 잘못하면 벌을 받아야 했고 실제 잘못된 일이 있으면 가차 없어 그 직원의 모습은 다시는 볼 수 없었습니다.

전체 회의시간이 돌아왔다. 회의에 처음으로 참석한 나는 과연 어떤 방식으로 회의를 할까 하면서 있는데 회의 분위기가 매우 엄숙했습니다. 기본적인 설명이 끝나고 바로 회의를 진행하던 사람이 갑자기 회의에 참석한 직원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고 또한 답변이 오갔습니다. 또한 영어로 질문을 하기도 하고 영어로 답변을 듣기도 하였습니다. "혹시 나에게도 질문을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질문을 받는 사람은 대부분 반장 이 상급이었습니다.

회의에 질문이 참 생각하지도 못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단순한 질문은 하나도 없었고 대답하는 직원도 이마에 땀방울이 날 정도로 심각한 질문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캐리비안베이에서의 일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모든 일이 달인이 되어 갔습니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는 작은 쓰레기도 한눈에 알아보았으며 특히 어른 아이들 구분할 것 없이 먹고 있는 구슬아이스크림은 나에게는 공공의 적으로 보이기도 했습니다. 

구슬아이스크림을 먹을 때 바닥에 수 없이 떨어져 여러 가지 색깔로 물을 들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바로 청소하지 않으면 자국이 오래 남아 더욱 많은 힘이 들어가 속으로" 왜 저 아이스크림을 파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원망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있으면서 단 한 번도 그 아이스크림을 사 먹지 않았습니다.

또 하나 어려운 점은 아이들이 갑자기 물에 들어가기 때문에 안전사고예방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이 나에게 있었습니다. 그것은 음식을 많이 먹고 물에 들어가 노는 아이들 중 가끔 토를 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물에 토를 하게 되면 주면 손님에게 큰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항상 주시하면서 손님의 상태를 파악해야 했습니다.

사소한 일부터 중요한 일까지 찾아보면 분명하게 나누어져 있기 마련이지만 이곳은 사소한 일이 따로 없었습니다.

날씨가 점점 가을 날씨에서 겨울로 다가오자 캐리비안 베이도 야외 풀장을 축소시키고 실내로 이동하였습니다.

실내로 들어와서 일을 하니 실내에는 더 많은 시설 등이 있었다. 지금도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썬텐실도 갖추어져 있고 실내 파도풀도 생각보다 크게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함께 일한 많은 사람들이 실내로 편입되면서 인원 축소가 불가피해서  대부분이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10월 26일 IMF 때문에 캐리비안베이 일부를 문을 닫았고 나는 더 이상 그곳에서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정말 다행은 기분 좋게 그만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다음 해인 1998년 여름에 전화가 캐리비안베이에서 연락이 왔는데 방학 때 도와달라고 하였으나 학교 버섯 연구실에서 일을 하고 있어 갈 수 없었고 주말에만  도와주었네요. 

1998년 8월 주말에 전두환 대통령이 온다고 해서 도와주러 간 적이 있었는데 그 당시 청소는 정말 비상이었습니다. 안전문제도 있었지만 깨끗하게 하기 위해 모든 사람들이 합심하여 구석구석 청소를 하였는데 참 그 순간순간이 너무나도 즐거운 추억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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