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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자서전

강원도 양구 오일장

by 농수도 2021.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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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집안이 요란하다. 다름이 아니라 오늘은 시장에 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5일마다 열리는 장날이지만 장에 가는 것은 이 시골에서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대를 많이 할 수밖에 없다.
시골이라 집에 현금이 없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해서 장에 갈 때 굳이 돈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버스 요금만 챙겨 가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이야기를 한번 만들어 볼까.


때는 1983년 4월 5일 식목일이기도 하지만 5일장이기도 하다.
아침에 버스를 탈 생각을 하니 잠이 오지 않고 뜬눈으로 방문으로 들어오는 새벽의 빛을 바라본다.
시골 버스라 하루에 읍내에 나가는 버스는 딱 한번 있고 또한  아침에 읍내에 나가서 저녁에 들어온다. 그것은 참 많은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시장에 가서 시간이 많아 많은 것을 구경할 수도 있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지루함의 연속일  경우도 있다. 하지만 버스 타는 것에 참 많은 의미를 두었다.
할머니께서 어머니에게 떡을 한말 하라고 해서 어제 저녁에 쌀을 준비 해 놓았다. 그리고 검은콩  두말도 함께 마대에 담아 놓았다.

이곳은 시골이라 하루에 차 한대 구경하기도 어렵다. 가끔씩 전방지역이라 탱크가 지나가곤 하지만 탱크는 나에게는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어쨌든 아침 7시가 되어야만 오는 버스를 6시부터 나가서 기다린다. 사실 집에서 길까지 거리는 10m도 되지 않았기 때문에 버스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그때 나가도 늦지 않았고 버스도 동네에 오면 미리 소리를 낸다.

하지만 버스 도착시간이 매일 다르기 때문에 미리 도로 옆에서 기다린다. 시골이라 따로 버스 주차장이 없다. 그냥 사람이 서 있기만 하면 그곳이 버스 주차장이 되곤 한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지친 기색 없이 난 버스 소리에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버스 문이 열리자  어느새 버스에 타고 있던 동네 아저씨가 내려와 쌀과 콩을 버스에 들고 타는 것을 도와준다. 그리고 난 버스 창가에 않는다. 사실 시골이라 평일 학교 가는 날이 아니면 서 너명 탈까 말까 하기 때문에 좋은 자리 않는 것은 너무도 쉬웠고 서서 간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하였다.


난 버스에 타면 읍내에 나갈때까지 별 움직임이 없다. 그저 창 밖을 바라보며 세상 구경하는 것이 너무 행복했기 때문이다.

"와 저런 집이 있네" 저런 집에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가끔은 안테나를 보면 "저 집은 TV가 있어서 참 좋겠다" 하면서 가다 보면 읍내에 금방 도착한다. 사실 거리 사상은 20Km 밖에 되지 않지만 시골 비포장 길이고 고개가 있어서  한 시간이 훨씬 더 걸린다.


읍내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콩을 가장 좋은 가격에 판매해야 하기 때문에 양곡 상회에 들린다. 사실 그날은 지난겨울에 산에서 캐낸 삽주라는 약초가 있어서 가지고 갔더니 1근에 오천원씩 해준다고 해서 3만원이라는 돈이 생겼다. 이 돈 중 내가 5천원을 갖는다.

일주일간 산을 돌아다니며 캔 보람을 이때 느끼곤 했다.  그리고 콩을 판매하고  바로 떡방아 집에 들러 쌀을 맡긴다. 사실 더 이상 할 일은 없다. 집에 가는 버스가 저녁 7시에 떠나기 때문에 11시간을 그냥 기다려야 할 판이다. 그렇지만 난 떡방아 집에서 쌀을 빻는 것을 보며  한 시간을 버틴다.

어머니는 그곳에서 만난 아줌마들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낸다. 그사이에 난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하다가 바로 옆에 있는 장난감 가게를 향한다. 5천원이라는 큰돈으로 무엇을 할까? 하면서 장난감 가게 앞에서 창문을 통해 이것저것 둘러본다. 장난감 가게 아저씨 별명은 딸기코 아저씨였다.  항상 코가 딸기처럼 붉게 물들여 있었기 때문이다. 아저씨가 춥다고 들어와서 구경하라고 한다.

난 들어가서 이것저것 보다가 300원짜리 조립하는 장난감을 살까 이나면 1,000원짜리 자동차 세트를 살까 하다가 결국 주머니에 속 들어가는 300원짜리 장난감을 하나 사서 주머니에 넣는다.

양구 시장

그리고 다시 떡방앗간으로 돌아온다. 이제 어머니가 점심 먹으러 가자고 하면서 시장으로 향한다. 시장에 들어가니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여름에는 올챙이국수 500원 정도면 배부르게 먹을 수 있지만 봄에는 별로 먹을 만한 게 없다. 그래서 그냥 내가 좋아하는 순대를 시켜서 먹고 정육점으로 향한다. 정육점 아줌마는 나를 보고 "많이 컸구나 "하면서 반겨준다. 그러면서 냉장고에 돼지껍질을 그냥 한 봉지 가득 주면서 할머니 갔다가 주라고 한다.

그곳에서 TV를 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 하다 보면 날이 금방 저문다.  약초 판 돈으로 TV를 구입하자고 그동안 엄청 졸랐더니 어머니가 한번 중고를 알아보자고 해서 중고 TV가게에 가보았다. 그곳 아줌마가 5만원에 판다고 한다. 14인치 흑백 TV를 말이다. 난 엄마 표정을 보고 그냥 다음에 사자고 말하고 그곳을 나섰다. 떡방아 집에 들르니 벌써 떡이 종이 박스에 넣어서 포장이 되어 있었고 어머니하고 같이 버스터미널까지 들고 또 버스를 기다린다. 아침에 버스를 기다리는 것과는 정반대의 느낌이다.

읍내에 오면 집도 많고 사람도 많아서 볼 것이 많지만 다시 시골에 들어갈 생각을 하니 서운한 감이 생긴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집에 와서는 할머니와 함께 떡에 기름칠을 하고 가래떡 하나를 입에 넣는다.  밤이 깊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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