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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자서전

김밥보다 깻잎이 더 좋은 이유

by 농수도 2021.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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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내가 깻잎으로 쌈을 만들어 주었는데 갑자기 옛날 소풍 때의 생각이 난다.

깻잎을 보면 자꾸만 옛날 생각에 잠긴다.

초등학교 다닐때 우리 집은 가난하다는 것 그 이상이었다. 태어나자마자 45일 만에 아빠가 돌아가신 것 때문이기도 했지만 손바닥 만한 논과 밭에서 나오는 농산물은 우리 가족의 끼니를 때우기는 너무나도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밥에는 밥알보다 감자가 더 많았고 난 그 감자가 싫어서 매일 밥보다는 누룽지만 먹으면서 보내기도 했다.

초등학교 초반에는 도시락을 가지고 다녔다. 그냥 밥과  신 김치가 다였지만 배가 고픈 나에게는 그것도 매우 고마웠던 것이였다. 또한 나라에서 보리쌀을 주어 쌀밥보다는 보리쌀 밥 먹는 날이 더 많았지만 그래도 도시락은 하얀 쌀밥만 가지고 다녔다.  그러다가 어느 날 선생님 부재로 인하여 고개 너머에 있는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해야 할 일이 있어서 할 수 없이 버스를 타고 가서 수업을 받고 도시락을 열었는데 밥과 매운 고추장이 전부였다.

그런데 주변에서 나의 도시락을 보고 놀리는 것이였다. 난 밥을 몇 숟가락을 먹다가 보니 점점 나로 향하는 눈빛이 더 많아졌다는 것을 느끼고 더 이상 밥을 먹지 못하고 도시락 뚜껑을 덮었다. 그것이 나에게 도시락을 포기하게 만든 시점이다. 

그다음부터 나에게 도시락은 없었다. 그동안 배가 고파서 도시락을 가지고 다녔는데 그때부터 배고픈 것보다 창피한 것이 더 싫었기 때문이다. 점심때 운동장에서 그냥 그네를 타면서 보냈지만 그래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아니 배고픈 것을 느끼지 못했다. 최대한 아침을 많이 먹고 또한 학교 끝나고 집에 가면서 주변에 있는 각종 찔레 줄기, 아카시아꽃 및 엉겅퀴 줄기 등 각종 산나물 뜯어먹으면서 배를 채우며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거리는 그리 멀지는 않았지만  키가 작은 나에게는  학교까지 가는 시간이 40분 정도 걸렸다. 그때부터 중학교, 고등학교 때도 도시락은 가지고 다니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 소풍은 나에게 많은 상처만 주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김밥 때문이다. 김밥이 싫어서가 아니라 집에서 김밥 재료를 구입할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풍 때마다 엄마는 하얀 밥에 계란 프라이를 해서 주곤 하였지만 난 친구들 앞에서 도시락을 꺼내지도 않고 그냥 집으로 가지고 돌아왔다.

가을 소풍때였다.  엄마는 맛있는 도시락을 만들었다며 나에게 주었다. 속으로 난  "이젠 나도 김밥을 먹게 되었구나" 하면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학교로 향했다. 학교에는 벌써 친구들 가족들이 함께 와서 웃음꽃이 폈다. 하지만 난 혼자였다. 오늘 엄마는 밭에 일이 있어서 오지 못했다. 아니 그동안 소풍 때 엄마는 한 번도 참석을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다른 부모들은 선생님에게 맛있는 음식도 드리고 촌지도 주곤 했지만 우리 집에서는 아무것도 줄 것이 없어서 아예 오지도 않았던 것이었다. 운동장에 모인 친구들과 가족은 근처에 있는  냇가로 향했다. 그리고 며칠 전부터 만든 연극을 부모님께 보여주면서 자랑하였다. 이날 연극에 나도 참석하여 기분 좋게 마무리하였다.

그리고 기다리던 점심시간이 되자 각자 가족들끼리 옹기종기 모여서 통닭과 음료수 그리고 김밥을 차려 놓기 시작했다. 주변 한 친구가 나에게 오라고 해서 친구 가족들과 함께 자리를 않아 내 도시락을 열었다.

그런데 도시락에는 김밥이 아닌 깻잎으로 김밥처럼 만들어 놓았던 것이었다. 물론 깻잎으로만 만들었던 것이였다.

난 뚜껑을 그냥 덮고 친구에게 " 나 갑자기 화장실이 급해서  다녀올게" 말하고 그 자리를 피해 소풍장소에서 잘 보이지 않은 논으로 향해서 엄청 울었다. 너무 창피했다. 가난한 것이 너무 슬펐고 억울했다.

결국 난 깻잎으로 만든 나의 도시락에 있는 밥을  먹지 않고 집으로 가지고 돌아왔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엄마는 밭에 일을 하러 갔던 것이었다. 밤이 되자 엄마는 돌아와서 내가 하나도 먹지 않은 도시락을 보면서 아무 말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 생각을 하니 가슴속까지 숨이 막혀 온다.

내 도시락을 만들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서 깻잎으로 정성껏 만든 도시락이었다. 그런데 난 창피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것을 입도 대지 않은  것이 얼마나 잘 못했는지 느낀 것은 그 후로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난 후였다.

나의 자녀에게 해주고 싶은 것 못해줄 때의 심정을 이제야 알게 되었으니깐 말이다...

삶은 만들어 가는 것이고 지금도 늦지 않았다. 과거의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그 과거를 아름답게 꾸며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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