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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자서전

수원 아진공업에서 사출업무를 배우다.

by 농수도 2023.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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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군입대에 앞서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하다가 그동안 농업 관련 일만 하다 보니 다른 일도 하고 싶어 과감하게 공장에서 일을 해보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곳은 수원 영통지역에 있는 아진공업으로 삼성 엘지 등에 납품하는 협력업체로 세탁기, 컴퓨터 자판 등 각종 플라스틱 제품을 만드는 곳이었습니다. 

공장은 24시간 가동이 되었으며 8시간씩 3교대로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이런저런 일을 했지만 이렇게 3교대로 24시간 가동하는 곳에서는 처음 하는 것이라 신선하기도 하였습니다.

군 입대전에 좀 힘든 일을 하고 싶었지만 이곳에서 일하는 것이 생각보다 힘들지 않고 단순한 일이었으며 일하시는 분들 역시 밝은 표정으로 즐겁게 일하고 있었습니다. 

첫날 일은 드럼세탁기가 아닌 일반세탁기에 세제류가 들어가는 부품의 사출인데 사출기에 작은 철망을 넣고 사출이 완료되면 꺼내기만 하는 정말 단순한 작업이었습니다. 이렇게 쉬운 일이 더 있을까 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그 일은 시작일 뿐이었습니다.

그다음은 환풍기 겉 케이스가 사출이 되고 나서 컨베이어 시스템으로 나오는 것을 일일이 확인하면서 플라스틱 재료가 들어가는 자리에 뾰족하게 나온 부분과 날카로운 부분을 칼로 제거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이 것 역시 별거 아니라는 생각으로 했지만 제거하는 과정에서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숙달된 사람은 정말 눈감고 하나에 1초도 걸리지 않을 정도로 하였지만 나는 실수가 연속이었고 지체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나의 실수에 대하여 그 누구도 혼내거나 싫은 소리를 내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과장님과 부장님도 옆에서 보면서 반복적으로 가르쳐주고 또 알려주는 모습을 보고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 새로운 제품 사출 시  기존 직원들은 척척 일을 해나갔지만 나는 정상적인 제품을 불량제품으로 만드는 것처럼 느낄 정도로 실수가 거듭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칼을 잡는 위치와 제품을 잡는 위치 하나씩 배워나갔습니다. 그렇게 배우면서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칼로 플라스틱 주변을 정리할 때 보니 기계로 처리하는 것보다 훨씬 깔끔하게 되어 가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기존 일하는 사람들의 속도까지 따라잡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분들이 속으로 얼마나 답답해하였을까 생각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무런 내색하지 않고 끝까지 지켜봐 주었던 그분들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지 않았나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처음부터 일을 잘하는 사람은 없으며  또한 계속 실수를 해 봐야만 그 일에 대하여 좀 더 정확하고 세부적으로 알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스스로 터득하길 바라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몇 달을 그곳에서 이런저런 제품들을 만들기도 하고 주기적으로 기계 등을 청소하였는데 일하는 사람들의 열정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일이 끝나고 가끔씩 원천유원지 앞에 있는 작은 술집에서 간단하게 소주 한잔 하면서 집에 돌아오곤 하였습니다.

5월 말 군입대로 인하여 그곳에서 일을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곳에서 사람들과의 만남과 일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 것에는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초급자가 들어올 때 커다란 테두리를 만들고 그 테두리 안에서 직원이 스스로 실수하고 배울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처음부터 조금만 실수하여도 크게 잘못을 따질 것이 아니라 실수가 일어나지 않도록 주변정리를 하고 또한 배려를 통해 스스로 깨우쳐 나가게 하는 방법을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아이가 자라면서 가끔씩 이곳저곳에 부딪쳐서 다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경우 잘못이 아이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부모에게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직장인이 작은 실수는 하되 큰 실수는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런 준비가 필요하다고 보입니다.

아진 공업에서는 직원 관리는 출퇴근 카드기록으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 이렇게 하지 않는 직장이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전자식이나 수동이냐의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출퇴근 관리는 모든 직장이 한 발 앞서가는데 아주 작은 실천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군대 있을 때 기상시간과 취침시간이 정확하게 지켜지는 것 역시 이런 출퇴근에 대한 약속을 지키기 위한 시작점 일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직장생활에서 기본이 되는 출퇴근 시간 명확하게 하는 것은 앞으로 반드시 지켜야 할 사항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물론 급한 사정이 있다면 그 사정에 따라 바꾸면 됩니다.

사출공장에서 일할 때 사무실과 공장은 분리되어 있었습니다. 사무실 직원들 역시 논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다만 언젠가는 저 자리에서 일을 하기 위해서는 지금 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좀 더 배우고 남보다 앞서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아쉬웠던 것이 있다면 사출에 필요한 기계류가 국산은 하나도 없었고 모두 수입제품이었습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생산되어도 판로 확보가 어려워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 사출기계가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하나의 로봇이였으며 기계 가격이 상상을 초월하였습니다. 모든 시스템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영어로 된 컴퓨터 화면을 보고 입력을 해야 하는데 입력하는 숫자 하나 실수로 너무 많은 피해가 발생되기 때문에 초기에 세팅할 때는 대부분 긴장을 하고 또한 세팅 후 사출을 시작하면서 수백 개씩 제품을 일일이 확인하면서 테스트를 합니다.

이때 처음에 나오는 제품을 보면 정상적으로 보였지만 그들은 모두 폐기하는 모습을 보고 또 한 번 대단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완벽한 제품을 판매하기 위해서는 절대로 작은 문제점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작은 문제점을 안고 가지 않는다는 것과 그리고 제품이 100% 완벽하게 될 때까지 노력하는 모습에 감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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