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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자서전

양구에서 신문배달을 시작하다.

by 농수도 2023.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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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어렸을 때였습니다. 중학교 1학년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갈 때까지 크게 할 일은 없고 그냥 기다림이 연속이었습니다.

학교 수업이 3시나 4시에 끝나고 나면  집에 가는 버스가 오는 7시까지 여유가 있었습니다. 물론 공부를 해도 되겠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죠. 아이들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가까운 오락실에서 시간을 소비하기도 하였지만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다행히도 저녁에 신문을 돌릴 수 있는 신문보급소를 알게 되었습니다.

1시간 정도만 돌리면 될 물량이었고 돌리는 장소도 학교 근처라 어려움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물론 학교 주변 지리를 잘 아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약간 불안감도 있었습니다. 

자전거에 신문 100 여부를 싣고 가장 먼 곳부터 달려가서 신문을 전달하였습니다. 당시 남면에 군인아파트가 하나 있었는데 그것이 아파트 전부였다. 그것도 5층 아파트였는데 내부가 궁금하지는 않았지요. 이유는 형평상 아파트는 상상 속에 건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1층 우편함에 신문을 넣고 한집 한집 전달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신문배달 리스트를 가지고 다녔지만 얼마 후부터는 리스트 없이 그냥 전달이 가능하였습니다. 그리고 숙달이 되니 점점 시간도 단축되어 갔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나서 보니 구독자 중 한집을 빠뜨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그 집에서 왜 신문보급소에 전화를 하지 않았는지 궁금합니다. 나중에 지나가다가 우연하게 집주인이 "우리 집은 왜 신문을 빠뜨리고 가냐고?"이야기하여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거 잘못하면 한 달 아르바이트비도 못 받을 것 같아 구독자에게 "죄송해요. 어떡하죠?" 했더니 "1달 동안 가져오지 않은 신문을 다 가져와라"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뭐. 신문보급소에 신문이 충분하게 있었기 때문에 다음날 모든 신문을 구하지는 못했어도 대충 며칠 것만 찾아서 전달해 주었는데 구독자는 아무 말도 웃으면서 "그래 고생했네 앞으로는 꼭 부탁한다"라고 이야기하며 마무리되었습니다.

참 좋은 구독자를 만난 것인지 아니면 그냥 내가 불쌍해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어쨌든 그렇게 마무리되고 나서 기분은 좋았던 것으로 기억에 남았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이렇게 좋은 고객을 만났을 때는 거의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리 일을 잘해도 단 1%만 잘못을 한다면 결국 모든 것이 허사가 되기 때문이죠

처음에 가지고 있던 리스트를 계속 가지고 다녔어야 한 것이었습니다. 그때 신문을 다 돌리고 나중에 1~2개씩 남았을 때는 그냥 더 가지고 온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 문제였다고 생각이 듭니다. 

결국은 더 가져온 것이 아니라 고객에게 전달하지 않았던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이 요즘도 착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본인이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그것은 본인 생각이지 제삼자 생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착각에서 빠져나와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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