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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맛집/향토유적&문화제35

연안부부인 전씨 묘소 용인 향토유적 제18호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 33-29번지에 위치한 연안부부인 전 씨 묘소를 다녀왔습니다. 일부 안내판에는 기흥구 마북동 산2-4번지라고 되어 있으나 실제 가보니 마북동 33-29번지가 맞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기존 번지에서 분할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용인 향토유적으로는 1990년 11월 22일 지정이 되었다고 합니다. 근처에 가보니 전봇대에 이정표가 있었으나 오래 되었는지 벗겨져서 표시가 잘 보이지 않지만 대략 짐작은 할 수 있었습니다. 묘소 입구에 '대소인계하마라고 쓴 하마비가 있는데, '어른이든 아이든 모두 말에서 내리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또한 전씨의 위패를 안치한 가묘 현조사가 있는데 정면 3칸, 측면 1칸에 툇마루가 있고, 지붕은 한식 골기와를 올린 맞배지붕입니.. 2021. 11. 13.
오윤겸 선생 묘 경기도 기념물 제104호 오윤겸 선생 묘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오산리 산 5번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조선 선조. 광해군. 인조 대에 여러 관직을 역임한 오윤겸은 해주 오 씨로 성혼의 문인입니다. 선조 22년(1589) 문과에 급제하여 영릉참봉.봉선전참봉 등을 역임하였고 임진왜란 때에는 정철의 종사관으로 활약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광해군 9년(1617)에는 통신사로 일본에 가 임진왜란 때 잡혀갔던 150명의 포로를 데려왔고, 그것을 계기로 일본과의 국교를 정상화시키는 외교적 수완을 발휘하기도 하였습니다. 인조반정 후 대사헌에 임명되었고 이어 이조. 형조. 예조의 판서를 역임하였습니다. 인조 2년(1624) 이괄의 난 때에는 왕을 모시고 공주까지 내렸으며 인조 6년 영의정에 올랐습니다. 이.. 2021. 11. 8.
용인 주북리 고인돌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49호 포곡읍 유운리 고인돌에 이어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주북리에 있는 고인돌을 한번 돌아보았습니다. 주북리 고인돌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주북리 825번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초행길로 이곳을 찾는다면 들어가는 입구를 찾지 못해 어려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네비를 켜고 가다가 집 옆 작은 길을 통해서 가야 하는데 차량 주차할 곳이 없고 막다른 길이라 근처에 차량을 주차하고 가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고인돌 즉 지석묘란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굄돌을 지상에 세워서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덮개돌을 올려놓는 탁자식과 무덤방이 땅속에 있으면서 받침돌에 덮개돌이 높인 바둑판식, 맨 땅 위에 덮개돌이 놓인 개석식으로 구분이 됩니다. 우리나라 전역에 약 3만기 정도가.. 2021. 11. 7.
용인시 포곡읍 유운리 고인돌 용인에서 살면서 모현읍에 고인돌이 있는 것은 알았지만 포곡읍에 고인돌이 있는지는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하게 유운리 88번지에 고인돌이 있다고 하여 방문을 해 보았습니다. 고인돌 하면 굄돌 2개가 있고 그 위에 덮개돌이 있는 것만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유운리에 있는 고인돌은 그냥 조금 큰 바위로 생각이 들 정도로 특색이 있지 않았습니다. 고인돌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전혀 관리가 되지 않아 바위 위에 나뭇가지들이 그냥 있고 음료수 캔 등 쓰레기도 주변에 떨어져 있어서 안타까울 뿐이었습니다. 소중한 문화제가 그냥 방치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인들은 크게 탁자식, 바둑판식, 개석식으로 구분이 된다고 합니다. 유운리에 있는 고인돌 현태를 볼때는 개석식 고인돌로 보입니다. 개.. 2021. 11. 6.
민영환 선생 묘 경기도 기념물 제18호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 544-4 번지에 위치한 민영환 선생 묘를 다녀왔습니다. 구성초등학교 뒷편에 있으며 안내표시가 잘 되어 있어 찾아가는 것은 쉬운 편입니다. 우리 주변에 문화유적이 이렇게 있어도 관심이 없다면 있는지도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방문 당시 비교적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것을 보았는데 묘지 왼쪽으로 등산로가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민영환 선생묘는 경기도 기념물 제18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민영환 선생 묘는 대한제국기 문신인 민영환(1861~1905)의 묘소입니다. 민영환은 1878년 문과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습니다. 특히 외교관으로서 서양의 여러 국가들을 방문하여 근대적인 문물제도를 배웠습니다. 이후 독립협회를 적극 지원하면서 개혁.. 2021. 11. 6.
수원 향교 용인 향교에 다녀와서 생각난 것이 바로 수원향교입니다. 그래서 기존에 가본 것을 오늘 올려 봅니다. 수원 향교는 수원시 팔달구 향교로 137번길 43에 위치하고 있으며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호로 되어 있답니다. 그때는 몰랐는데 수원향교가 경기도 문화재자료 1호라는 것을 알고 다시 한번 알아보고 싶어 졌네요. 향교는 조선시대 지방에 설치된 국립 교육기관입니다. 수원향교는 원래 경기도 화성시 봉담면 와우리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1789년(정조 13) 수원읍치가 지금의 수원시로 이전되면서 팔달산 남쪽 기슭에 자리 잡게 되었으며 여러 번의 수리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합니다. 향교 입구에는 하마비와 홍살문을 세워 향교의 권위를 과시하였습니다. 건물 배치는 향교의 가장 전형적인 전학 후 묘 형식으로 되.. 2021. 11. 6.
용인 향교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18호 용인향교에 다녀왔습니다. 용인향교는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용인향교로 12-6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용인 향토유적을 알아보다가 향토유적 1호가 용인 향교라는 말을 듣고 방문하였는데요. 현재는 경기도의 문화재자료 제188호로 지정되어 있었습니다. 향교는 조선 시대에 각 고을마다 유학을 교육하고 유교 성현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입니다. 각 고을의 중심지에는 관아, 사직단, 향교를 설치하여 고을의 기본 틀을 만들고 질서를 바로 잡았다고 합니다. 용인향교는 용인현의 중심지인 구성에 건립되었으며 법화산에서 서쪽으로 뻗은 능선 말단부에 서향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가장 높은 곳에 제사 공간인 대성전이 위치하고 내삼문을 두어 신성한 곳으로 구분하였습니다. 그 아래.. 2021. 11. 6.
용인시 상하동 고인돌 용인시 상하동 678번지에 위치한 고인돌에 다녀왔습니다. 이곳은 규모는 작지만 지석 2어린이 공원이기도 합니다. 용인 상하동 고인돌은 경기남부지역에서 대표적인 북방식 고인돌로 판 형태의 받침돌 2매가 쓰러져 있고 그 위에 무거운 덮개들이 깨진 채 올라가 있습니다. 이 고인돌은 상하동 362-1번지에 자리 잡고 있었으나 훼손과 오염이 발생하는 주변 환경으로부터 고인돌을 보호하고자 2016년 11월 25일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고 합니다. 이 마을에는 고인돌이 두 곳에 있어 상지석, 하지석이라 불렀고 그로 부터 상하동이라는 명칭이 유래하였습니다. 이 고인돌은 하지석이고, 상지석은 현재 소재지를 알 수 없습니다. 고인돌은 원래 청동기시대의 무덤 양식 중 하나이지만 발굴조사 결과 이미 이동되어 매장의 흔적은.. 2021. 11. 5.
포은 정몽주 선생 묘 경기도 지방문화제 제1호 정몽주 선생 묘는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 산 3번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고려 말의 충신이며 동방이학지조로 추앙된 포은 정몽주(1337~1392) 선생의 묘소입니다. 선생의 자는 달가, 호는 포은, 시호는 문충이며, 본관은 영일로 정운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공민왕 9년(1360) 과거에 연 삼장 장원급제하여 벼슬이 예문관검결부터 예조 정랑, 대사성문하찬성사 등 벽상삼한삼중대광수문하시중까지 오르고 안산공신의 훈호를 받았습니다. 오부학당을 세워 후진을 양성하고 향교를 세워 유학을 진흥하여 우리나라 성리학의 기초를 세웠습니다. 또한 당시 부패된 관료들의 사전제도를 혁파하고 의창을 세워 빈민을 구제하고 수참을 두어 조운에 힘썼으며, 조전원수로 함경도, 전라도 지방을 침범.. 2021. 10. 31.
홍계희 묘 용인시 향토유적 제37호 홍계희 묘는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일산리 산 2-1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홍계희(1703-1771)는 조선 영조 때의 문신으로 자는 순보, 호는 담와, 본관은 남양입니다. 영조 13년(1373) 별시문과에 장원한 후 정언. 수찬을 거쳐 영조 18년(1742) 북도 감진어사로 나가 공을 세웠고, 이듬해 북도 별견어사를 역임하였습니다. 이후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와 1749년 충청도 관찰사, 이듬해 병조판서에 올라 균역법을 실시하는데 힘썼습니다. 그 후 이조 판서, 한성부 판윤을 거쳐 1757년 편집당상으로 열성지를 증보하는 한편, 왕명으로 해동악을 지었습니다. 관직이 판중추부사로 봉조하에 이르렀습니다. 글씨를 잘 썼으며, 시호는 문간입니다. 저서로 삼운성휘, 준천사실, 균역사실, 경.. 2021. 10. 31.
남구만 선생 묘 용인시 향토유적 제5호 남구만 선생 묘는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초부리 산 1-5에 위치하고 있답니다. 남구만의 묘소는 본래 양주의 불암산 화접동에 초장 되었다가 뒤에 모현읍 초부리 하부곡 마을에 이장을 한 것이라고 합니다. 당시의 봉분은 원형이었으나, 1970년대 후반 후손들이 묘역을 확장하면서 방형의 지대석 기단을 둘러 봉토했습니다. 정경부인 동래 정 씨와 합장한 묘소 앞에는 본래의 석물인 묘표와 망주석, 향로석 등이 배열되었습니다. 장명등, 상석,혼유석 등은 새로 설치한 것입니다. 묘표에는 음기가 없으며, 비신이 방형의 대석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대석 정명에는 10판의 운문판이 새겨져 있으며, 하단 각 면에는 6판의 당초문판이, 중앙과 각 모퉁이에는 동자주가 새겨져 있습니다. 가첨석 상단에는 좌우로.. 2021. 10. 30.
오희문 묘 용인시 향토유적 제34호 오희문 묘는 용인시 모현읍 오산리 산 5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오희문은 조선 중기의 학자로서 자는 비연, 본관은 해주이며 경민의 아들로 영의정을 지낸 윤겸의 아버지입니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힘써 학식이 높고 문필이 훌륭했으며, 학자로서 행실 또한 고결하고 돈독했습니다. 그러나 과거에 오르지 못한 채 재야의 학자로 시종하던 중 영달한 아들 윤겸의 덕으로 만년에 선공감 감역을 제수받았습니다. 그는 비록 관직에 나아가 큰 벼실은 못했으나, 임진왜란을 직접 체험하면서 당시의 사회적 동태와 피난생활을 생생하게 기록한 쇄미록을 남겨 놓았습니다. 이 저술은 선조 24년(1591)부터 선조 34년(1601) 2월까지 약 9년 3개월간의 사실을 상세히 기록한 총 7책이 일기입니다.. 그 중 임진.. 2021. 10. 30.
이사위 묘 용인시 향토유적 제63호 이사위 묘는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매산리 산 108-1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사위(1342~1402)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 문신으로 본관은 용인이며 구성분원군 이중인의 아들입니다. 공은 일찍이 신진사로 1360년(공민왕 9년)에 포은 정몽주, 삼우당 문익점 선생등과 함께 과거에 급제하니 공의 나이 18세였습니다. 1390년(공양왕 2년) 경연참찬과관 좌부대언 밀직부사를 거쳐 동왕 3년 서해도 관찰사 등을 역임하였습니다. 조선 개국 후 두문동의 한사람인 아버지 이중인의 뜻에 따라 不事二君의 유지를 받들려 했으나 유민들의 간곡한 원류를 뿌리치지 못하고 벼슬길에 나아가게 되었음을 아쉬워했습니다.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지는 못하였으나 일신에 부귀영달을 꾀하지 않고 오직 나라와 백성을.. 2021. 10. 30.
이일 장군 묘 용인시 향토유적 제21호 이일 장군 묘는 용인시 향토유적 제2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용인시 모현읍 매산리 산 108-1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일 장군의 묘는 매산리 상촌마을 고시 능에 있으며 정부인 전주 이 씨와 합장한 묘입니다. 묘소 앞 중앙에는 묘표. 상석. 향료석이 있으며 좌우에는 문인석 등의 석물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묘표에는 음기가 없으며, 재료는 화강암으로, 규모는 높이 145cm, 폭 60cm, 두께 16cm입니다. 이일(1538-1601) 장군은 조선 선조 때의 무신으로, 자는 중경, 본관은 용인입니다. 경기도 관찰사를 지낸 백지 7대손으로 중종 33년(1538) 현 포곡읍 신원리에서 출생하였습니다. 명종 13년(1558) 무과에 급제한 후 경원 부사에 특임되어 북변에 침입한 니탕개를 격.. 2021. 10. 29.
오달제 선생 묘 및 대낭장비 용인시 향토유적 제3호 오달제 선생 묘 및 대낭장비입니다. 용인시 향토유적 제3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오산리 산 45-14에 위치하고 있답니다. 오달제 선생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3학사의 한 분으로 자는 계휘, 호는 추담, 본관은 해주입니다. 인조 12년(1634) 별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전적.수찬 등을 거쳐 인조 14년(1636) 부교리가 되었습니다. 이때 후금과의 사신 교환에 적극 반대하여 주화파의 최명길을 탄핵하였습니다. 병자호란 때는 남한산성에 들어가 청나라와의 화의에 반대, 주전론을 주장했습니다. 화의가 성립된 후 적진에 송치되었는데, 적장 용골대의 심문에 굽히지 않아 다시 심양으로 이송되었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홍익환, 윤집과 함께 살해되었습니다. 뒤에 영의정에 추.. 2021. 10. 29.
용인시 마북동 석불입상 및 석탑 용인시 향토유적 제52호 용인시 기흥구 마복동 330-1번지에 위치한 석불입상 및 석탑을 돌아보았는데요. 용인시 향토유적 제52호로 지정되어 있었습니다. 석불입상은 현재 용화전이라는 전각 속에 봉안되어 있었습니다. 전각 바로 좌측면에는 남아있는 부재를 모아 건립한 탑 1기가 있고, 그 앞에는 2열로 선정비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탑재는 파탑이 되어 쓰러져 있던 것을 수습하여 세운 것으로 쌓아놓은 석재중에 다른 석재가 포함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양련이 조각된 1측 옥개석 위에 얹혀 있는 방형 석재는 대좌형 기단의 상대석으로 보이는데 이 상대석의 뒷면에 치석 된 옥신과 임의 폭이 1층 옥신의 폭보다 좁아 같은 석조물의 부재가 아닌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용화전은 좌우 각 한칸의 건물에 전면을 제외한 삼.. 2021. 10. 16.
용인시 운학동 돌무지 용인시 향토유적 제 42호 운학동에 위치한 밭에 가면서 항상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운학동 돌무지인데요. 그래서 오늘은 용인시 처인구 운학동 141번지에 위치한 운학동 돌무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안내문이 있었는데요. 안내문에는 "이 돌무지는 예로부터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해마다 제를 올리는 곳입니다. 각종 무속 행위 및 해를 끼칠 시 고발 조치 하겠습니다."라는 말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만큼 마을에서 매우 소중한 곳 임을 알 수 있답니다. 운학동 돌무지는 용인시 향토유적 제 42호로 지정되어 있답니다. 또한 돌무지의 형태는 전면 하단에 치석과 같이 크고 모난돌로 쌓았으며 상단은 잡석으로 덮여 있고 후면보다는 동쪽이 잘 보전되어 있었습니다. 크기는 둘레가 14.2m이며 높이는 1.71m이고 직경은 .. 2021. 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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