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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맛집/향토유적&문화제

민영환 선생 묘

by 농수도 2021. 1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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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기념물 제18호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 544-4 번지에 위치한 민영환 선생 묘를 다녀왔습니다.

구성초등학교 뒷편에 있으며 안내표시가 잘 되어 있어 찾아가는 것은 쉬운 편입니다. 

우리 주변에 문화유적이 이렇게 있어도 관심이 없다면 있는지도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방문 당시 비교적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것을 보았는데 묘지 왼쪽으로 등산로가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민영환 선생묘는 경기도 기념물 제18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민영환 선생 묘는 대한제국기 문신인 민영환(1861~1905)의 묘소입니다.  민영환은 1878년 문과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습니다. 

특히 외교관으로서 서양의 여러 국가들을 방문하여 근대적인 문물제도를 배웠습니다. 이후 독립협회를 적극 지원하면서 개혁을 시도하였고, 일본의 제국주의와 내정 간섭을 비판하였다고 합니다. 

1905년 일본이 강제로 을사늑약을 맺고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아 가자, 민영환은 이 조약에 찬성한 5명의 대신을 처형하고 조약을 파기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고 이에 죽음으로 항거하기 위해 자택에서 자결하였습니다. 

대한제국 2천만 동포와 각국의 공사에게 보내는 유서를 남겼으며, 그의 죽음은 국민의 항일 의식을 북돋고 의병 운동을 일으키는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민영환의 묘는 원래 수지구 풍덕천동에 있었으나, 1942년 후손들이 이곳으로 옮겨 오면서 부인과 합장하였다고 합니다.  봉분 앞에 석물로는 상석과 향로석이 놓여있고, 좌우로 문인석과 망주석이 각각 한 쌍씩 배열되어 있으며, 중앙에는 장명등이 있습니다. 

상석 오른쪽에는 1959년에 건립한 묘비가 있는데 앞면 글씨는 이승만 전 대통령이 썼다고 합니다. 

유서내용은 " 슬프다 국치와 민욕이 이에 이르렀으니 우리 인민은 장차 생존경쟁 속에서 모다 멸망하게 되었다 무릇 살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죽고 죽기를 기약하는 자는 반드시 생을 득하는 것을 제공은 어찌 양해하지 못하니뇨 영환은 다만 일사를 결하므로써 우러러 황은에 보답하고 우리 이천만동포에게 사죄 하노라. 영환은 죽었다 하여도 죽은 것이 아니라 제군을 구천 지하에서 기필코 도울 것이다 부듸 우리 동포형제는 천만으로 분려를 배가하여 지기를 굳게 하고 학문을 힘쓰고 결심륙력하여 우리의 자유 독립을 회복하면 사자가 맛당히 명명 지중에서 희소할것이니 슬푸다 조금도 실망하지 말지어다 우리 대한제국 이 천만 동포 에게 결고 하노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용인독림운동 유적을 다녀왔는데요. 민영환 선생의 뜻을 생각하게 한 하루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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