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을 거슬러 1998년, 경기도 안성의 한 유리온실에서 저는 농업의 미래를 보았습니다. 당시 그곳은 단순한 농장이 아니라, 당대 최고의 기술력이 집약된 최첨단 현장이었습니다. 우리는 흙 대신 양액을 사용하는 수경재배를 도입했고, A용액과 B용액을 정밀하게 배합하여 실시간으로 EC(전기전도도) 농도를 체크하며 토마토의 생육을 관리했습니다. 토마토가 자라나는 속도에 맞춰 상단에서 유인줄을 내려 작업의 편의성을 극대화한 시스템은, 그 자체로 완벽한 효율을 지향하고 있었습니다.
농장주께서는 농촌진흥청 출신의 농학 박사님이셨습니다. 학문적 깊이와 현장의 기술이 결합하니, 전국 각지에서 견학 인파가 구름처럼 몰려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우리가 일구어낸 성과를 인정받는 것 같아 뿌듯했습니다. 누군가에게 우리의 앞선 기술을 설명하고 가르치는 일은 묘한 자부심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달콤한 자부심 이면에는 '일의 방해 요소'라는 거대한 그림자가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명성이 높아질수록 본연의 업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일을 해야 할 금쪽같은 시간에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시스템을 설명하다 보면, 정작 토마토를 돌봐야 할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 버렸습니다. 낮 동안 사람들에게 할애한 시간만큼, 우리는 밤늦도록 추가 노동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그때 저는 깊이 깨달았습니다. 농업의 본질은 '최고의 작물을 키워내는 것'이지, '우리가 얼마나 대단한지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외부의 찬사에 취해 스스로를 과시하려 할수록, 정작 우리가 지켜야 할 토마토의 생명력은 시들어갈 위험에 처해 있었던 것입니다.
이 뼈아픈 농장의 교훈은 오늘날 마트 경영의 현장에서도 놀랍도록 선명하게 투영됩니다. 매장이 활성화되고 소문이 나면, 벤치마킹을 하러 오거나 비결을 묻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마련입니다. 이때 경영자가 빠지기 쉬운 가장 위험한 늪은 바로 '자신이 대단한 존재라는 착각'에 빠지는 것입니다.
고객이 아닌 방문객들에게 운영의 묘를 자랑하느라 시간을 빼앗기면, 정작 매장을 찾은 '진짜 고객'은 소외됩니다. 사장이 설명의 즐거움에 취해 있는 동안, 누군가는 지저분한 매대를 지나치고, 누군가는 길어진 계산대 줄에서 인내심을 잃어갑니다. 자랑하는 마음에 에너지를 쏟느라 정작 고객에게 드려야 할 서비스의 밀도가 낮아지는 것, 이것이 바로 마트가 몰락의 길로 접어드는 전조 증상입니다.
이러한 방해 요소를 제거하고 본질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단호한 결단이 필요합니다. 외부의 요청을 무조건 수용하는 것이 미덕은 아닙니다. 진정으로 매장의 성장을 원하신다면, 외부 견학이나 상담 요청은 매주 특정 요일과 특정 시간으로 제한하여 운영하는 시스템을 갖추십시오.
그 외의 모든 시간은 오로지 고객만을 위해 존재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만큼 잘한다"는 자랑을 늘어놓을 에너지가 있다면, 그 에너지를 "오늘 우리 고객에게 무엇을 더 해줄 수 있을까"라는 고민으로 전환하십시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화려한 진열보다, 고객의 동선 하나를 더 편하게 배려하는 묵묵함이 결국 매출의 차이를 만듭니다.
경영자 여러분, 자랑은 잠시의 만족을 주지만 성실한 서비스는 영원한 고객을 만듭니다. 1998년 안성의 유리온실이 외부인의 박수 소리에 취해 본연의 책무를 잊었다면, 결코 최고의 결실을 맺지 못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트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전시장'이 아닌, 고객의 삶에 깊숙이 뿌리 내린 '진정한 장터'가 되길 바랍니다. 자랑하고 싶은 욕구를 시스템으로 통제하고, 그 빈자리를 고객에 대한 진심 어린 고민으로 채우십시오. 본질에 집중할 때, 매출은 비로소 우리가 설명하지 않아도 스스로 증명될 것입니다.
고객을 향한 그 깊고 고요한 집중이, 여러분의 매장을 가장 빛나는 곳으로 만들어줄 것입니다.
마트는 살아있는 생명체다 @김선규 - BOOKK 서점 (김선규의 마트 매출 증대 방안)
마트는 살아있는 생명체다 - 김선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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