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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by 농수도 2021.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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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대문구 통일로 251 에는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곳은 1988년 사적 324호로 지정이 되었다고 합니다. 

주차장이 비교적 넓은편이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운영시간은 여름철(3월~10월)은 9시 30분부터 오후 6시까지이며 겨울철(11월~2월)은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5시까지이며 입장 마감은 관람종료 30분 전까지 가능하다고 합니다. 

관람료는 어른은 개인 3,000원이며 단체는 2,400원이며 청소년(13세이상~18세 이하)은 개인 1,500원, 단체는 1,200원입니다. 어린이는 개인 1,000원, 단체는 800원입니다. 

서대문형무소가 위차한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현저동 101번지는 조선 후기 북쪽 의주로 가는 큰 길인 의주로가 위치한 곳으로, 사대문 안과 밖을 동서남북으로 잇는 주요 교통로였다고 합니다. 이에 주변에 중국의 사신을 맞아들였던 영은문과 모화관이 있었고, 1897년에는 영웅문이 없어진 자리 앞에 독립문이 세워졌다고 합니다 

일제는 이곳 현저동에 대규모의 근대 감옥을 설치하여 이곳을 오가던 한국민에게 식민지 절대 권력에 대해 복종을 강요했고 감시와 통제를 위한 식민지 지배 도구로 이용하였다고 합니다. 

서대문 형무소는 대한제국 말기, 일제에 의해 1908년 10월 21일 경성감옥으로 개소되었습니다. 개소 당시 전국 최대 규모의 근대식 감옥으로, 국권을 회복하고자 맞서 싸운 한국민을 저지하고 탄압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한국민에 대한 억압과 처벌의 장소로 이용되어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수감.순국하였으며, 광복 이후에는 독재정권에 의해 많은 민주화 운동가들이 수감되어 고난을 치렀던 곳입니다. 

이곳 서대문 형무소는 1908년부터 1987년까지 80년의 감옥 운영기간 동안 식민 권력과 동재정권에 항거하여 자유와 평화를 위해 수많은 희생이 있었던 역사의 현장입니다. 

서대문 형무소는 1912년 마포 공덕동에 대규모 감옥이 신축되자 경성감옥은 서대문감옥으로 이름이 변경되었으며 이때 공덕동의 감옥을 경성감옥으로 칭하였습니다. 서대문 감옥은 이후 1923년 5월 5일 서대문형무소로 바뀌어 1945년 8월 15일 광복까지 식민지 감옥으로 운영되었다고 합니다. 

개소 당시 1,600㎡의 규모였던 서대문형무소는 증축과 개축을 거듭하면서 1930년 대에는 51,200㎡으로 약 30배 이상 규모가 확대 되었다고 합니다. 이는 독립운동에 따른 소위 '사상범'의 급증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오른쪽 사진은 취조실 이라고합니다.  일제는 재판을 받기 전 미결로 수감되어 있었던 독립운동가를 일일이 경찰서로 이송하여 취조하는 번거로움을 없애기 위해 고등계 형사를 직접 서대문형무소에 파견하여 이곳 지하에서 취조를 하였다고 합니다. 

왼쪽 사진은 임시 구금실이라고 합니다. 취조 전 수감자를 임시로 잠시 구금하였던 곳으로 취조 과정에서 자행되는 고문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동지들의 비명 소리와 일경의 폭언이 들리도록 배치하여, 독립운동가에게 심리적으로 압박을 가했다고 합니다. 

물고문 현장입니다. 강제로 수조에 머리를 집어넣거나, 코나 입에 물을 마구 들이부어 호흡을 곤란하게 하여 고통을 주어던 고문방법으로 폐에 물이 차서 흉막염에 걸려 매우 고통스럽게 사망에 이르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지하 독방 모습입니다. 취조 후 옥사로 이동하기 전 감금했던 곳으로 곳곳에서 들려오는 고통의 비명소리와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고문의 공포로 휩싸인 공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지하 동방에서도 독립운동가는 만세 소리를 멈추지 않았고 독립의 다짐을 되새겼다고 합니다. 

중앙사 모습이며 중앙사는 1923년 제10.11.12 옥사와 연결하여 옥사 전체를 감시하고 통제하기 위해 신축되었던  2층 건물입니다. 1층은 간수들의 사무공간으로 이용되었고, 간수들은 이곳을 통해 옥사로 출입하였습니다. 2층은 전체 공간을 강당으로 꾸며 수감자들의 전향 교육하는 교회당으로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 서대문형무소 내 우물은 총 7개가 있었으며 식수, 청소, 빨래 등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하였으며 해방 이후에도 사용되다가 1987년 서울 구치소가 경기도 의왕시로 이전함에 따라 철거되면서 우물은 한 개만 남았고 1992년 독립공원 조성사업이 시작되면서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우물 안쪽을 돌로 메웠다고 합니다. 

사형장 모습이며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된 애국지사들이 억울하게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간 장소입니다. 사형장은 지하 1층, 지상 1층으로 구성된 일본식 목조건물로 1923년에 세워졌으며, 5m 높이의 담장으로 둘러싸여 외부와 격리되었습니다. 사형 장치는 교수형 집행을 위한 개폐식 마루판과 교수 줄, 죄수 가림막 뒤쪽에 위치해 마루판을 밑으로 내리는 래버 장치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마루판 아래 지하공간은 시신 수습실로 사형수의 사망 여부를 확인하였다고 합니다. 

시구문이라는 곳인데 일제강점기 사형집행 후 시신을 외부로 반출하기 위해 뚫어놓은 통로입니다. 구타, 고문 등으로 시신에 흔적이 많은 경우, 사형 사실을 외부에 공개했을 때 사회적으로 문제가 우려되는 경우 시신을 인도할 유적이 없는 경우 등에도 이용되었다고 합니다. 외부와 연결된 통로의 길이는 약 200m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확인되지 않으며 해방 이후에도 사용하다가 1987년 서울구치소로 철거 계획에 따라 입구를 봉쇄하였으며 1992년 독립공원 조성 시 발굴하여 40m를 복원하였다고 합니다. 

이곳은 본래 옥사가 있었으나 1987년 서울구치소가 경기도 의왕시로 이전하면서 철거되었으며 가운데 복도를 중심으로 양쪽은 감방이 있던 자리입니다. 2010년 보수.정비시 우너 형의 자리를 확인하여 붉은 벽돌로 표시하였으며 붉은 벽돌은 당시 옥사를 지었을 때 사용된 원형으로 가운데에는 마포 공덕동의 경성형무소에서 만들어진 것임을 표시하는 京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서대문형무소 여옥사 8호 감방은 3.1독립만세운동 때에 많은 여성 지도자들이 수감되었던 감방이었습니다. 이곳에 유관순도 1919년 8월 형무소에 이감되어 이곳 8호 감방에 수감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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